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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에는 여름을 어떻게 보냈지?" 역사로 알아보는 조상들의 여름 나기

조선왕조실록에서 찾아본 조상들의 여름 나기

등록일 2023년06월08일 11시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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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됐다. 지금이야 에어컨과 선풍기가 있어 여름을 시원하게 보낼 수 있지만, 우리 조상들은 더운 여름을 어떻게 보냈을까?

 

 

조선왕조실록을 통한 조선의 왕들의 여름 나기 방법 <출처_국사편찬위원회>

◆조선시대 절대 권력자 왕은 여름을 어떻게 보냈나?

조선시대에는 신분에 따라 여름을 보내는 방법이 달랐다. 그렇다면 조선시대의 절대 권력자였던 왕은 여름을 어떻게 보냈을까? 조선시대 왕의 생활을 기록한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왕들이 여름을 어떻게 보냈는지 알 수 있다.

 

대부분의 왕들은 주로 궁내 피서지인 창덕궁 후원에서 수박과 참외를 즐겨 먹었으며, 얼음물에 꿀과 한약을 섞은 ‘제호탕’을 즐겨 마셨다고 기록돼 있다.

 

왕들 중에서는 현대인들과 같은 방법으로 여름을 보낸 왕도 있다. 조선 제7대 국왕인 ‘세조’는 시원한 계곡을 찾아 더위를 이겨냈다고 조선왕조실록은 기록하고 있다. 세조가 자주 찾은 계곡으로는 ‘오대산 계곡’이 있으며, 오대산에는 세조와 얽힌 일화도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일화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왕에 오른 세조가 괴질에 걸려 병을 고치러 오대산 계곡을 찾았다. 세조는 다른 이들에게 자신의 병을 들키지 않기 위해 혼자 계곡에서 몸을 씻고 있다가 한 동자승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세조는 동자승에게 “이리 와서 등을 씻어 달라”라고, 이야기 하면서“ 어디 가서 임금의 몸을 씻어줬다 이야기 하지 마라”라고 이야기하자 그 동자승은 세조에게 “왕도 어디 가서 문수보살을 직접 봤다 이야기하지 마시오”라고 대답하고 사라졌다고 한다. 깜짝 놀란 세조는 등을 돌려 이곳저곳을 살펴봤지만. 그 동자승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종기가 나은 것을 확인한 세조는 감격한 나머지 화공을 불러 동자로 나타난 문수보살을 그리게 하였다. 이후 그 그림을 표본으로 나무 조각을 했는데, 이것이 국보 제221호 목조문수동자좌상이다.

 

사도세자의 아들인 조선 제22대 국왕 정조는 더위를 이기기 위해 ‘책’을 읽었다고 조선왕조실록은 기록하고 있다. 정조는 “책을 읽으면 몸이 치우치지 않고 마음의 중심이 선다. 그래서 더운 기운이 몸에 들어오지 못한다”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조선시대의 폭군이라고 불리는 조선 제10 국왕 연산군은 조금 독특하게 여름을 보냈다. 아마도 그가 향락에 빠져 살아서인지 군사를 징발해 창경궁 후원에 대를 쌓게 하였고 그곳에서 연회와 축제를 즐기려 했다고 조선왕조실록은 기록하고 있다. 그렇게 지어진 것이 ‘서총대’인데 연산군은 서총대를 만들고 한 달도 되지 않아 인조반정으로 쫓겨나고 만다.

 

 

지금까지 조선의 왕들이 어떻게 여름을 보냈는지 알아봤다. 그렇다면 왕과 왕족 다음의 신분인 양반들은 어떻게 여름을 보냈을까?

 

 

 

양반들이 사용한 여름 피서 도구 <출처_국립중앙박물관>

◆조선시대 양반들과 백성은 여름을 어떻게 보냈을까?

양반들은 체면을 중시했기에 상민들처럼 옷을 벗어 던지거나 물속에 뛰어들지 못했다. 그래서 사랑방 옆 마루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 더위를 식혔다. 또 차가운 감촉의 대나무나 왕골로 만든 죽부인을 옆에 끼고 삼베옷 등을 입고 여름을 보냈다. 그 밖에 수반에 물과 돌을 채워 작은 호수를 만든 뒤 석창포를 심어 마음을 시원하게 달래고, 발을 차가운 물에 담근 채 시를 읋으며 경치를 즐기는 탁족회를 갖기도 했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백성의 여름은 혹독했다. 백성들은 농사를 지어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여름의 날씨가 덥나 시원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일반 백성의 여름은 혹독했다. 농사를 지어 먹고 살아야 했던 일반 백성들은 여름 날씨가 “덥다” , “시원 하다”의 문제가 아니라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였다 여름에는 가뭄으로 매우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다.

 

조선왕조실록 중 세종실록에 기록된 충청도 날씨기록을 보면 1433년 8월 23일 충청도 도사(都事) 조주(趙注) 영춘현감(永春縣監) 민달손(閔達孫), 보은현감(報恩縣監)우흥범(禹興範)이 임지로 떠나기 위해 임금에게 하직 인사를 하니, 임금이 직접 그들을 알현하고 “내가 듣기로 그 지방이 일찍이는 가물었고 늦게는 큰물이 져서 곡식들이 손상되었다고 하니, 백성들의 생계가 걱정스럽다. 그대들은 마땅히 이 뜻을 마음에 품고 백성들의 목숨을 구제하라.”고 말했다.

또한 1434년 8월 16일에는 대흥현감(大興縣監) 임중(任重)이 임지로 떠나기 위해 하직을 고하니 “충청도는 근래 흉년을 만나 내가 매우 염려하니, 백성들을 은혜로 구휼하여 굶주리지 않게 하고 형벌을 삼가며 농업과 잠업을 권장하여 백성들의 생활을 넉넉하게 하라.”고 말했다.

 

 

백성들이 여름을 보냈던 방법 <출처_국립중앙박물관>

이렇듯 조선시대의 여름은 가뭄으로 매우 힘든 시기를 보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고 백성들이 무작정 무더운 여름을 보낸 것은 아니다. 더위를 이겨내기 위해 가장 많이 사용한 것이 부채였고, 대나무로 만든 죽부인을 많이 사용했다. 또한 그 지역에서 가장 차가운 계곡에 들려 더위를 피하곤 했다.

 

오늘날에는 에어컨과 선풍기로 인해 시원한 여름을 보낼 수 있지만, 옛 선조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여름을 보냈다. 이런 선조들의 여름 나기 방법을 바탕으로 우리도 올 여름 건강하게 지내보자.

 

 

이상준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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